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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같이 기사

‘정당공천’폐지 대신 ‘지역정당’인정 하자


시의원이 시민을 두려워하기 보다 공천을 주는 국회의원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공천장이 곧 당선증이기 때문이다. 공천비리가 생기는 이유도 공천이 곧 당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법은 두 가지다. 국회의원이 공천을 주지 못하도록 하거나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을 깨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공천을 주지 못하도록 하려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되고(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후보를 추천하는 등 상향식 공천을 제도화 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지금 우리나라 정당의 수준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므로),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을 깨는 것은 더디고 힘들 수 있지만 방법은 있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이 비리정치, 예속정치를 완화할 수 있는 보다 직접적이고 빠른 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더디고 힘들어도 옳은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이 아플 때 약보다 체질개선이 중요한 것처럼.

가장 큰 이유는 비례대표제 때문이다. 선거제도의 목적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새삼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비례대표제야 말로 민의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비례대표제도 없어지게 되니 이것은 마치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꼴’이 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진주시민들은 2006년 처음 도입된 지방선거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에 18.2%의 지지를 보냈다. 그렇다면 그 지지율 만큼의 의석이 확보돼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부분적인 비례대표제로 인해 한 석만을 얻어 당시 본인 혼자 시의회로 진출할 수 있었다. 21명 시의원 중 단 한 명뿐인 민주노동당 시의원이었지만 “진주시민 5명 중 1명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내세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 약자를 배려하는 정치를 하라는 주문이니 내 의견을 반영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이제 그마저도 없어진다면 18.2%의 지지는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나는 비례대표제를 여성과 소수정당 진출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상대적 소수의 민의를 저버리지 않기 위한 문제로 바라봤으면 한다. 

지금 지방자치를 왜곡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특정정당이 지방의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 의회에서는 토론이 사라진다. 대화와 타협이 무의미해진다. 특정정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그 자체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 밖에 없다. 단체장마저 같은 정당이 될 경우 의회는 집행부를 견제하는 대신 거수기로 전락하거나, 의회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의회에 다양한 목소리 나게 하려면 비례대표제 포기할 수 없어

지방행정은 결국 ‘정치’라는 것을 실감

정당기호 아닌 정책으로 경쟁하는 지방정당 필요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고, 의회에서 일방의 목소리만 난무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다양한 목소리가 나게 하려면 비례대표제를 계속 시행해야 하며 오히려 전면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위험한 것은 정당공천제 폐지 주장과 소선거구제 부활 주장이 함께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소선거구제는 49대 51의 대결에서 49의 민의를 저버리게 되는 잘못된 제도이며, 특정정당이 싹쓸이를 손쉽게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미 전국시군자치구의회협의회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정당공천제 폐지와 함께 소선거구제로의 회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새누리당과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에게 제일 반가운 요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기호부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정당공천제가 현실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광역자치단체장-광역의회-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회를 동시선거로 뽑으면서, 같은 정당 후보자들의 기호까지 일치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에 따라 후보의 경력이나 정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유권자들은 광역단체장부터 기초의원까지 정당기호만 보고 투표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중앙정치의 상황이 특정정당에 유리하게 돌아가면 지방선거에서 싹쓸이를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 미국 주의회에서는 공천제도를 유지하면서도 기호는 추첨으로 하고 있는 곳이 있으며, 이런 사례를 참고하여 반드시 개선해야 할 문제다.


“기초의회나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무슨 정치냐. 그러니 정당공천제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복지의 많은 부분이 지방으로 이양되어 ‘보편적복지를 할 것이냐, 선별적복지를 할것이냐’ 하는 것이 시장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달라지고, 물 민영화 문제만 보더라도 수도행정이 그저 ‘행정’이 아니라 ‘정치’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앞으로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정치의 영역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필자 또한 지금 정당들에 불만이 많다. 법에서 인정하는 민주정치발전의 중요한 매개체이기는 커녕 그 자신이 비민주적이고, 지역분할구도에 기대어 잇속을 차릴 뿐, 지역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은 없다. 그러니 공천권을 박탈하자는 것인데, 과거를 한번 돌이켜보자. 시의원이 비스듬히 뒤로 앉아서 국회의원의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국회의원보다 나이도 많고 돈도 많고 사조직도 튼튼하니 아쉬울 게 없었던 것이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그 폐해가 당장 치유되는 대신 돈과 개인조직, 혈연, 학연, 지연 등 1차적 관계가 당락을 결정짓는 첫 번째 요소로 재등장하게 된다.


‘정당 너네들은 자격이 없으니 하지 마라’가 아니라 지금처럼 독식할 수 있는 구조를 허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역정당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역유권자들도 스스로를 조직해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미 독일에서는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는 유권자단체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지방정당(local party)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주민들이 지방정치에 참여하는 흐름이 활발하다. 이런 흐름을 통해 지방정치에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야 한다. 이제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정당기호가 아니라 정책으로 경쟁하는 지방정치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 없이 ‘좋은 지방의회’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