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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같이 기사

‘자연’속에 살면서 ‘사회운동’에도 앞장

웃음끼 넘치는 동안의 안경 너머에 비치는 여유로운 눈빛은 삭발, 농성 등 치열했던 현장속의 환경운동가 최세현을 잊게 한다.

대기업 시멘트 회사의 중간관리자가 12년이란 시간을 거치며 자연을 품은 숲해설가로,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환경운동가로 세상과 호흡하게 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혼자 잘 살면 무슨 재민겨’를 외치며 삶의 일부를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쓰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이야기 하는 그를 만나보자.


  • 경상도에서 자란 걸로 아는데,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삼천포 촌놈이에요. 고등학교 때 공부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나 봐요. 재수 끝에 81학번으로 한양대 공대에 갔습니다.

당시 시국이 참 엄혹했는데 전 학생운동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학교 들어가자마자 미식축구부에 들어가 공부도 뒷전이고 운동과 지하 써클룸에만 처박혀 지냈죠. 2학년 때 전공을 정하는데 성적에 맞춰 자원공학과를 가게 되었어요. 쉽게 광산학과라고 보면 됩니다. 진짜 실습을 탄광으로 갔답니다. 결국 지하보다는 지상이 낫겠다 싶어 석회석광산을 개발하는 시멘트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어요. 89년 단양으로 발령을 받아 거의 11년 동안 석회석먼지를 먹고 살았습니다.

  • 잘나가는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왜 귀농을 하신 거죠?

돌이켜보면 직장생활 자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중간관리자의 위치에서 겪는 사람관계의 문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선택을 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물론 IMF시기 명예퇴직 바람도 일조했던 것 같구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내의 동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제가 당시에 너무 힘든 표를 많이 냈나봐요. 


  • 가족 얘기를 좀 해주시죠. 연애결혼 하셨나요?

아내와는 참 운명적이었던 같아요. 고3때 진주의 친구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제가 군대 갔다 복학해 보니 그 집이 성남으로 이사를 한 거예요. 친구에겐 여동생이 한명 있었고 복학해서 그 친구 집에 놀러 다니다 지금의 아내인 그 여동생의 친구를 만나게 된 겁니다. 처음 만난 날 문학청년답게 냅킨에 조병하의 시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를 싸인펜 번진 글로 마음을 담아 건넸어요. 한마디로 작업이죠. 나름 용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5년 연애를 거쳐 직장 잡고는 바로 결혼했습니다.

아들 힘찬이는 제대 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음악을 하고 싶어 하고, 딸 나눔이는 성공회대에 다니고 있어요. 둘 다 간디학교를 나왔죠. 


  • 귀농이야기를 좀 해보죠. 준비를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99년 2월 퇴사를 하고 만40세였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어려운 선택이 저나 가족들에게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죠. 청주 환경운동연합 귀농학교를 비롯 많은 정보를 얻고 귀농에 필요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집도 직접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횡성에 있는 한국통나무학교도 다녔구요. 

특히 조희부 선생과 함께 충북괴산 눈비산마을에서 힘들게 보낸 1년 2개월이 제 인생에 밑거름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그리고는 산청으로 내려오신 건가요?

시기적으로 맞았던 것 같아요. 당시 산청 간디생태마을 조성 정보를 보고 바로 내려와 봤죠. 4만5천평 산속의 19가구, 지금의 산청 안솔기마을의 제1호 귀농가구가 되었죠. 아이들 교육문제도 중요했으니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의 존재도 결정에 한 몫 했었죠.


  • 그래서 ‘호텔 꼬꼬’와 간디유정란이 탄생되었군요, 왜 하필 닭을 키우신거죠?

저는 귀농을 하면서 농사일에 치여 일만 쫓게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반농반X’라는 말처럼 어느 정도 다른 것을 생각하고 돌아볼 여유는 있어야겠다고 여겼죠. 상대적으로 양계가 노동의 강도도 좀 적고 기후변화에 민감하지도 않으며 수입도 일정하니 판로만 확보되면 귀농에 딱이다 싶었습니다. 


  • 기존 양계와 간디유정란의 차이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대부분의 달걀은 공장식축사에서 생산되죠. A4용지크기에 닭이 2마리씩 7단 8단까지 꼼짝도 못하고 날마다 알을 낳죠. 유정란의 비율은 5%도 안됩니다. 이런 공장식 축사를 하면서 주사기로 수정을 시켜 유정란이라고 판매하는 경우도 있으니 수정여부를 가지고 유정란을 보는 것보다 닭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호텔꼬꼬’는 간디학교 아이들이 간디유정란 농장을 부르는 애칭인데 닭들에게는 호텔이라고 불릴만한 환경과 성장촉진제나 항생제를 쓰지 않고 순환농법으로 닭을 기릅니다. 


  • 운영은 어떻게 하시는 거죠?

간디유정란은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진주 일원에 400명의 직거래 회원이 있습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직접 집집마다 배달을 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공급 날짜를 어긴 적이 없어요. 인대가 끊어져 병원에서 수술해야 되는 상황에서도 수술을 늦췄고, 수술 후에도 링거를 매단 채 배달을 했을 정도예요.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도 조문객 없을 때 나가서 배달을 했어요. 요란스럽다 할지 모르지만 이건 회원들과의 약속이기 전에 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니까요. 이 원칙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 소농직거래를 말씀하시는데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나 한살림 등과는 조금 다른 얘기가 아닌가 합니다.

규모가 커지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생산 유통구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손실이 발생하죠. 비용 또한 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유기농 친환경이란 것을 강조하지만 그것 역시도 조금은 다시 봐야 합니다. 농약만 안치면 그만일까요? 하우스 농사가 어떻게 친환경일 수 있습니까? 이젠 에너지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계란 하나에 얼마나 에너지가 들어가는가 그것이 중요하죠. 소농직거래가 자리 잡아야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그러나 현실적으로 친환경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물량의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절대적으로 부족하죠.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친환경먹거리를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역농산물이 중요하죠. 기존의 관행농법으로 생산된 먹거리도 지역농산물 개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 두 자녀를 모두 대안학교에 보내셨는데,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으시죠? 

간디학교 덕에 자연스럽게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구요. 아들 딸들이 모두 간디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보다는 예민한 시기 자연속에서 생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놓아 줄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물론 아이들 스스로도 그걸 원했구요. 어려서부터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대안교육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참 밝잖아요. 


  • 대안교육의 비율은 미미합니다.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학교폭력, 교권붕괴 등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 결국 이것은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론 대학에 목매는 현실을 어떻게든 바꿔야 합니다. 전 극단적으로 서울대를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서열이 존재하고 학벌이 카르텔이 되고 출세와 성공의 조건이 되는 구조가 깨지지 않고서는 공교육이 제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부모가 너무 자식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좀 놓아줘야 합니다. 자식들이 취직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돈도 못 벌까봐 두려운 거죠. 부모는 아이들에게 자기결정권을 넓혀주고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 경험을 함께해주면 되는 것 아닐까요.


  •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입니까? 

사실 귀농 준비 자체가 환경과 관계된 것이었어요. 양계를 택했던 것도, 대부분의 농사일이 해가 떠 있는 동안 쉴 수가 없어요. 그건 아니다 싶었죠. 벌이가 좀 적더라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그 시간을 세상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찾아가 문을 두드린 곳이 진주환경운동연합이었습니다. 


  • 우리지역 최대 환경 현안이라 할 수 있는 지리산댐과 케이블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리산댐은 4대강과 연계되어 부산물공급을 근본 목적으로 하는 댐이에요. 명백한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어요. 시간과 자연이 만들어 낸 비경인 용유담에 댐을 추진하면서 국토부는 부산 물공급은 언급도 않고 홍수조절용 댐이라고 억지를 부려요. 홍수가 난 적이 없는 곳에 홍수조절댐이라니 강이 없는 곳에 다리를 놓겠다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댐이나 케이블카는 대한민국의 힐링센터와 다름없는 지리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입니다. 


  • 지리산 케이블카는 지자체와 지역주민이 더 적극적이죠. 어떻게 보십니까?

지역개발이라는 미끼가 지리산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통영케이블카를 성공사례로 얘기하는데 지리산은 조망이 미륵도처럼 좋지도 않고, 돈벌이도 안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케이블카는 오히려 관광객을 머물게 하지 못하고 스쳐가게만 할 것이고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이 안 되고 업자들만 배불리게 될 것입니다.


  • 진주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하는 ‘지리산둘레길 걷기’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리산의 소중함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지리산을 지키자는 취지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은 2010년 ‘만사람이 어깨동무로 지리산을 감싸자’라는 ‘지리산 만인보’로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 2012년 ‘숲샘과 함께 걷는 지리산 둘레길’을 매달 진행했고, 2013년 지리산 둘레길 시민 모니터링단 ‘초록 걸음’으로 이어지고 있죠. 지리산 둘레길은 현재 총 274킬로미터에 22개 코스가 있습니다. 


  • 최근 인상적인 라디오 캠페인을 하고 계시죠? ‘찾아가는 숲 해설’신선하고 멋진 기획 같습니다.

환경운동이 늘 반대하는 모습만 부각되다보니 조금 부담이에요. 그래서 늘 고민하는 것이 시민 속으로 찾아가는 환경운동입니다. 아무리 작은 나무도, 오염된 곳의 풀도 우리에게 끝없이 숨을 내어 줍니다. 어머니와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단지 주위를 돌며 풀과 나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 줍니다. (제가 입담이 좀 좋아요^^) 처음엔 다들 시큰둥 하지만 풀과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면 금세 방청객 모드가 되어 탄성을 지르고 메모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어떤 풀과 나무라도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감으로 숲을 느껴야 그 감흥이 오래갑니다. 멀리 안가도 아파트 주위에서 충분히 할 수 있고, 풀과 나무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고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어요. 


  • 4대강 때문에 삭발도 하셨죠. 결국 ‘녹조라떼’ 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데..

우리 정부와 언론의 특별한 재주 중에 하나가 ‘공방신기’라고들 합니다. 정확한 답이 나오고 불 보듯 뻔한 사실마저도 공방으로 만들고 논란거리로 전락을 시켜버립니다. 4대강도 마찬가지지요. 결국 강이 망가지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생명과도 같은 물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보를 해체하고 이전으로 복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보존논리가 개발논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경험을 만들어야 합니다.


  • 밀양송전탑도 답답하기만 한데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밀양송전탑 문제는 결국 에너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에너지를 줄일까를 고민하지 않고 얼마나 더 에너지를 만들까를 고민합니다. 밀양송전탑 역시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보내야 되는 문제죠. 세계가 그 위험성으로 원전을 줄이는 추세임에도 우리나라만 오히려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고 더 나아가 수출까지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실 밀양송전탑도 UAE원전을 계약할 때 국내 원전을 계속 가동하고 새로 건설된 원전의 정상가동이 전제되어 있어, 공기나 예산문제로 강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전력난 이슈화도 어느 정도 분위기조성을 위해 의도적인 부분이 있구요. 여하튼 정부는 절대로 물러서진 않을 것이고 할머니들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 진주의료원 때문에도 바쁘시죠. 결국 도의회에서 폐원 조례가 날치기통과 되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진주의료원 문제의 본질은 홍준표 도지사의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으로 공권력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노조에 대한 적대감도 전제되어 있는 것 같고, 최소한의 민주적 의식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정부의 재의요청, 국정감사등의 변수가 있고 민주당에선 주민감사청구를 준비하고 있지만 결국 주민투표로 심판하는 방법 외엔 도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경남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면 투표율 33%가 그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해봐야죠. 지방선거로 홍준표를 심판하는 것은 여야의 구도 속에 의료원문제가 실종될 우려가 있습니다. 차라리 주민투표로 공식적으로 투쟁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의료원투쟁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나 우리가 챙겨봐야 할 것이 있다면?

시민사회의 힘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진주의료원이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노조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죠. 사실과 다르게 강성노조, 귀족노조로 매도되고 딱지가 붙었어요. 남아있는 70명뿐만 아니라 먼저 나간 노조원들까지도 그들의 상처를 우리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정신력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합니다. 좌우명같은 것이 있나요?

과한 평가구요. 할 수 있는 것만 약속하고 약속한 것은 지킨다는 누군가의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몸으로 때워서 실천하는 스타일이죠. 저는 전우익 씨가 한  이 말이 참 좋아요. ‘혼자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내일을 위해 오늘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말자’. 우리는 어쩌면 오늘을 유보하고 사는 것 같아요. 당장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지역 진주가 앞으로 어떤 동네가 되었으면 합니까..? 

전 개인적으로 진주가 살길은 남강의 물줄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을 따라 가면서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즐비했으면 합니다. 결국 문화쪽에 승부를 걸어야 하지 않을까요. 큰 행사나 축제보다도 강을 따라 골목 곳곳에 작은 문화적 공간이 즐비한 도시를 상상해 봅니다. 

인터뷰 =김현기·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