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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같이 기사

진주사람들, '영화'를 찍다

‘열정’ 하나로 단편 독립영화 <하루> 제작한 김경호씨



소위 ‘불금’이라는 지난 7월 26일 저녁, 세 번의 발걸음 끝에 드디어 영화 <하루>를 찍은 김경호감독님과 마주 앉게 되었다. 진주 사람이 진주에서 ‘영화’라는 것을 찍었다니? 어떻게? 그게 가능해?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지만, 그가 내가 지인들과 가끔 들르곤 하는 막걸리 집의 사장님이라는 사실엔 정말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쑥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와 조촐하게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조곤조곤하고도 담백하게 풀어내는 그의 영화 <하루>를 들었다. <하루>는 제목 그대로 한 남자에게 일어난 하루 동안의 사건이 양 15분 가량의 분량으로 전개되는 짧은 이야기이다. 사업에 여러 번 실패한 한 남자가, 다니던 공사장에서마저 허리를 다쳐 다시 실직의 상태가 되고, 아내는 그런 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위로받아도 모자랄 그의 하루는 딸아이가 물에 빠져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되면서 다시 절망과 마주하게 된다. 눈부시게 빛나는 노을을 바라보는 마지막 엔딩 속의 남자의 눈물은 참 아프다. 무엇이 이 남자의 인생을 이렇게 휘게 하는가? 감독은 오늘을 사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가장들이 얼마나 힘겹게 현실을 살아가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김경호 감독은 사실 영화를 전공한 영화학도는 아니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던 4학년 무렵 취업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다 취업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이 영화였다. 1학년 때부터 웨딩촬영 등과 같은 영상 일을 취미로 계속해 왔지만,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500만원을 들고 MBC영화아카데미에 등록한 것이 이 길에 본격적으로 나선 첫걸음이지 않은가 싶다. 그가 처음 취직한 곳은 매경TV. 그곳에서 AD(연출보조)로 6개월 정도를 다녔으나 AD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일종의 정리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 뒤 우연찮게 아는 선배의 권유로 박철수필름에 들어가게 되고, 당시 주류를 이루던 남북대치관계를 다룬 ‘데프콘’이라는 영화도 준비하게 되지만,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8)가 눈부신 흥행을 거두게 되면서 업계의 말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져버렸다고 한다. 


"<하루>를 감히 진행시킨 것은 이 영화를 보시고 ‘나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영화가 꼭 스케일이 커야만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뒤 다른 프러덕션으로 옮겨 섹션TV나 연예가 중계의 꼭지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지만 프러덕션이라는 것이 자체프로가 없으면 또 유지가 되지 않는 곳이라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일이 메이킹필름(영화제작 뒷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엮은 필름) 이었다고 한다. ‘씨네21’잡지를 보고 영화사마다 이력서를 써서 보내 인연을 맺게 된 영화사가 지금의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대표가 세운 우노필름이었다. 그 뒤 3년 정도를 영화 <유령>, <행복한 장의사>, <시월애>, <킬리만자로> 등의 메이킹필름을 찍었다. 그러나 메이킹필름을 제작하면서 영화의 제작과정은 잘 알지만 그 스텝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서의 기분은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출부와 제작부 사이를 부지런히 왔다갔다하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결과, <킬리만자로>를 만든 오승욱감독의 눈에 띄어 그의 연출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공들인 시나리오는 제작비 문제로 계속 엎어지게 되고 연출부  생활이 다 그렇듯 생계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결국 진주로 내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영화가 떠난 것은 아니었으므로 2001년 <검은바다>에 이어, 이제 <하루>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화 <하루>는 신안, 평거일대를 배경으로 약 한 달가량 걸려 찍었다고 한다. ‘너의 취미생활을 위해 돈을 댈 수는 없다’던 동창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내 주었다는 것 , 배우들의 시간을 일일이 조정하여 휴일만 골라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 딸아이 역을 맡은 아역배우가 물이 무서워 우는 바람에 결국 물에 빠지는 장면을 마네킹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던 것, 다리 사이로 빛이 지나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 다리마다 다니며 빛이 언제 들어오는지 일일이 체크한 것, 심지어 지미집까지 자체 제작하여 쓸 수밖에 없었던 일 등등 배우 최동석씨의 말처럼 완성도를 떠나 “열정”아니면 절대 못할 일이 아니었나 싶다. 


다음 영화는 좀 더 관객을 배려한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김경호감독은 진주에서 영화를 찍었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주위에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역량이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이 안 되어 못하고 계십니다. 제가 ‘하루’를 감히 진행시킨 것은 이 영화를 보시고 ‘나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영화가 꼭 스케일이 커야만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음악저작권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영화를 인터넷에 올릴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또 내일보다는 그 다음이 기대되는 김경호 감독을 위해 기꺼이 다음 영화 를 위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김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