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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같이 기사

응답하라, 2013

지난해 말 고려대학교 후문 게시판에 대자보 한 장이 나붙었다. 한국사회의 안부를 묻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한 대학생이 던진 이 화두는 일파만파 국민들의 삶의 틈새를 파고들면서 스스로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후 이런 내용과 형식의 대자보가 곳곳에 나붙었다. 심지어는 고등학생들과 주부들까지 나서서 자신의 안부를 물어보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시대상황은 무척 암울했었다. 날이 새면 대선부정사건의 증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위기에 몰린 국정원은 진보정당에 내란음모혐의가 있다고 발표하였고, 정부는 대선부정선거 여론을 돌리려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전무후무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까지 하면서 발악했다. 국민들이 밝힌 평화촛불에 물대포를 쏘는 공포정치로 이 나라 민주주의는 천 길 낭떠러지 밖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국가와 국민의 재산을 지키려는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에 1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았고, 공권력을 동원해 언론사와 민주노총 사무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밀양에서는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민의 죽음까지 왜곡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상황은 한국 역사상 어느 불행한 시기에 견주어도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아수라의 세상에서 우리는 행복한가. 누가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직 높은 연봉을 꿈꾸며 도서관에서 청춘을 다 보내는 청년들은 행복한가. 해고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행복한가.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상영까지 가로막고 나서는 저 비열한 기업의 회사원은 행복한가. 대기업의 횡포에 옴짝달싹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중소기업인들은 행복한가. 이리 뜯기고 저리 내주면서 목을 빼고 손님을 기다리는 자영업자들은 행복한가.

 

지방선거정당공천폐지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이 나라에서 깨끗한 정치지망생들은 행복한가.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파기해버린 이 나라에서 노인들은 행복한가. 중증질환보장 공약을 팽개친 이 나라에서 가난한 환자들은 행복한가. 장애연금공약도 지키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장애인들은 행복한가. 반값등록금 공약도 폐기처분해버린 이 나라에서 대학생과 학부모들은 행복한가. 무상보육 무상급식 공약도 불투명한 이 나라에서 어린이와 엄마들은 행복한가. 전시작전통제권을 되돌려주고 자주국방을 포기하는 이 나라에서 군인은 행복한가. 아예 공약도 하나 받지 못한 농어민은 행복한가.

 

양심에 따른 강론내용을 종북으로 몰아 수사를 받게 된 성직자는 행복한가. 정권의 눈치를 보며 김용판 무죄판결을 할 수밖에 없는 판사는 행복한가. 사실을 밝히려다 징계 받고 밀려나야하는 검사는 행복한가. 진실을 증언했다고 따돌림을 당하는 경찰관은 행복한가. 의료자회사설립으로 민영화가 눈앞에 닥친 의사들은 행복한가. 살인적 입시교육도 모자라 왜곡된 역사를 가르쳐야할 교사는 행복한가. 재임용탈락의 사슬 앞에서 교수는 행복한가. 정권의 실세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보조금을 내주어야하는 공무원은 행복한가. 양심을 고백한 내부고발자가 징벌을 받고, 도청감청미행계좌뒤짐까지 마구잡이로 자행하는 이 나라에서 국민 어느 누가 행복하겠는가.

 

경남도민은 행복한가. 진주시민은 행복한가.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안식처였던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았다. 보수정당대표를 지낸 경력으로 낙하산을 타고 와서 서민도지사라는 슬로건으로 도지사에 당선되더니 서민안식처를 마구 짓밟아버렸다. 진주시장은 침묵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을 상기한 것인지 진주시장은 말리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도지사와는 정치적으로 한 집안 사람이고, 서열로 따지면 아버지와 아들 뻘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경남도민도 진주시민도 행복할 수 없다.

 

2014년은 지방선거의 해다. 행복해지려면 이런 정치구도를 타파해야 한다. 다양한 성향의 정당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져야 감시도 하고 견제도 된다.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불행한 일이 늘어나는 이유는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때문이다. ‘자기만이 옳다는 생각이 심화되면서 자기 생각에 거스르는 주장이나 행동을 배척해서 생긴 일이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다양한 생각과 주장과 행동을 인정하는데서 나온다. 주권자들이 그런 정치구도를 만들어야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이다.

 

잊은 것은 상기하고, 잃은 것은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면서 흘린 피와 눈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권리와 양심과 정의는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어오는 2013년의 저 절규에 희망의 목소리로 응답해야 한다.

 

[김석봉 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