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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같이 기사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 다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아우성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다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아우성!!

 

 

 

 

한 대학생이 쓴 대자보 2장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어떤 이는 운동권스럽지 않은 표현 때문에 큰 공감을 얻어 내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대학생들의 정치 참여의 새로운 시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편에선 선동에 휘둘린 군중심리라는 식상한 비판도 곁들여 진다.

 

 

십 수년전만 하더라도 대학생은 군부독재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내걸어 싸웠던 우리 시대의 투사로서 각인되어 왔고 항상 불의에 맞서 정의를 외치는 순수성을 가진 사회변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IMF시대를 지나오며 우리의 대학은 철저히 상업화되었고 취업양성소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생들은 스펙전쟁의 투사가 되었고 토익과 학점에 목숨을 걸며 취업만이 유일무이한 꿈이자 목표가 된지 오래다. 더구나 엄청난 등록금은 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내 몰고 딴 생각할 틈을 주지도 않는다. 그런 20대들을 정치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고 우리사회의 부정과 부조리에 순응한다고 비판하기엔 그들에게 놓인 현실이 가혹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런 20대가 아무리 안녕한척 애쓰려 해도 안 된다며, 또 나만 안녕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청춘들을 향해 세상을 향해 안녕들 하냐고 물음을 던진 것이다.

 

우리 현대사는 안녕을 지키려는 기득권 권력과 그것으로 안녕치 못한 사람들의 싸움이었다.

안녕한 사람들이 있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나라가 망하고 회사가 망해도 안녕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사회를 구석구석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집단이다. 그것이 돈이 되었던 권력이 되었던 크든 작든 간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변화가 필요치 않다.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돈과 권력을 동원해 그들이 안녕한 체제를 영원히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안녕한 척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힘과 권력에 최선을 다해 보조를 맞추면 그들의 리그에 포함 될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 또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정의와 불의, 옮고 그름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이해관계 그리고 내가 안녕할 수 있는 길에 도움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만을 살피고 습관처럼 그 편에 선다.

 

그리고, 안녕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늘 힘겨운 싸움이 되고 불안한 미래에 고통 받으며 하루하루가 치열한 생존의 일상인 그들. 부당과 차별에 맞서기도 하고 우리사회를 변화시켜보겠다고 힘을 모아 투쟁도 하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과 스스로의 무력함에 패배감이 가득하다.

 

우리는 어쩌면 이러한 안녕한 사람들의 힘과 권력에, 안녕한 척 하는 사람들의 외면에, 안녕할 수 없는 사람들의 패배주의 덕에 이명박과 같은 국가권력 사유화 전문 대통령을 모시고 독재자의 딸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비정상적인 나라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모르는 척 안녕한 척 했다.

 

우리나라의 기득권집단체제는 해방과 분단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친일과 반공에 기초한 정통성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구축 되었다. 우리 현대사는 사실 이들의 안녕을 지키려는 권력과 그것으로 안녕치 못한 사람들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과 자본을 장악한 기득권집단은 끊임없이 이 싸움을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민주주의와 독재, 호남과 영남, 종북과 애국의 싸움으로 호도하고 변질 시켜가며 본질을 가렸다

 

지난 역사를 통해 우리 사회를 변화 발전 시켰다지만 다시 돌아 늘 제자리인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것, 2014년에도 여전히 군부독재시절의 망령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수 십년 동안 가동되어 온 이 기득권집단체제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를 치르고 나라 곳간을 거들내며 국익을 팔아 먹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며 언로를 차단해서라도 그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영원한 안녕을 꿈꾸는 기득권집단을 해체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여전히 이승만과 박정희가 추앙되는 시대를 살아야 함에 공분해야 한다.

 

강고해 보이기만 하던 기득권집단의 옹벽에도 균일이 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부재한 정통성을 창조해 내고 그들이 가진 자본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국가권력의 사유화와 양극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임계점이 넘고 말았다. 대선에서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부정선거를 치르고 또한 그 힘으로 그 부정을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의 후안무치에 기득권집단에서도 양심을 저울질 할 지경이다. 철도 의료 전기등의 민영화는 공익 파괴의 끝을 보여주고 대기업 친재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 안녕치 못한 이들이 분노하고 안녕한 척 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일임을 깨닫고 있다.

 

분명한 것은 기득권집단은 그들이 안녕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것이다. 쿠데타, 시민학살, 3당야합, 대통령탄핵, 4대강, 원전, 민영화, 부정선거까지... 또 무슨 드라마로 국민을 속이고 위기를 넘기려 할지 모른다. 영구한 안녕을 만드려 하는 기득권집단과 안녕치 못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맞서 있는 지금의 싸움은 절대로 물러 설 수 없다. 이것은 곧 부정선거을 덮고 민주주의를 포기하자는 말이고, 민영화의 길을 열어 국가의 존재의 이유와 공익적 가치를 버리자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조차 지키지 못한 다면 우리는 수 십년 후에도 더 처절한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를 보게 될 것이다.

 

 

진주사람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문화제 열어

 

지난해 연말 한 대학생의 대자보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안녕하지 못하다'는 응답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목소리들은 내용을 확장하고 형태를 달리하면서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페이스북 페이지 ‘진주 안녕들 하십니까?’는 지난 12월 21일과 28일 2회에 걸쳐 진주 차없는 거리에서 ‘대자보 문화제’를 제안 시민들과 함께 의미 있는 행사를 가졌다. 제안자는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해’라는 노랫말의 역설처럼, 미쳐가는 세상 안에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안녕하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를 안녕치 못하게 만드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통렬한 똥침을 날리자!> 라는 인사말과 함께 진주의 남녀노소, 계층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함께 모여 안녕하지 못하다고, 소리쳐 외치자며 동참을 호소했다.

대자보 문화제에선 각자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적은 손 피켓이나 자발적인 개인의 대자보를 가져오기도 하고 현장에서 직접 피켓이나 스케치북 미니자보를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또한 페북에서 작은 공연을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의견을 낸 문화 예술인들의 공연들도 이어졌다. 몇몇 시민들은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하고 함께 모여 솔직한 우리 마음을 외쳐라도 보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과 함께 율동을 하는 ‘바위처럼’ 플레시몹으로 작은 문화제를 마쳤다.

‘진주같이’와 페이스북 페이지 ‘진주 안녕들 하십니까?’ 운영진은 이러한 대자보 문화제를 1회성 행사가 아닌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서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해 나갈 방안을 논의해 새로운 집회문화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