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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같이 기사

‘다름’을 받아들이는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여자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장애인 엄마 김정현 씨 이야기

 

“1년 넘게 연습해서 500원에 떡볶이 한 컵 사는 것을 아주 잘합니다. 우리 아이와 함께하기 위해 천천히 기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알았으니까요. 욕심내면 힘들어짐을 이제는 아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놀면서 천천히 앞으로 가고 있어요.”

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나오기까진 1. 다운증후군 아이를 출산했을 때는 너무 부끄럽고 주위 시선이 두려워 아이 낳고 이틀 만에 집으로 왔다는 김정현 씨(가명). 다운증후군 아이를 두고 자신도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김 씨. 김 씨에게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로,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삶은 어떨지 알아보았다.

 

처음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주어졌는지 감당하기 힘들었고 무서웠죠. 낳고도 아이를 보지 못했어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남편은 입양 절차를 알아보았고 저 또한 무서운 마음에 동조했죠. 인큐베이터에 아파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인 내가 어떻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이 낳을 때까지는 행복했고 남편까지 저의 손을 꼭 잡아주었고 힘들 때 고통도 함께했는데. 단지 장애를 가졌다고 내 아이가 아니라고 부정한 나 자신이 나쁘고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남편과 갈등도 처음에는 심했어요. 설득하고 울면서 부탁했지요. 남편도 차츰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어요. 남편을 비롯해 우리 아이들도 막내를 너무 예뻐하고 좋아합니다. 아이가 장애인으로 태어난 게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생 죄인으로 산다면 결코 아이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 비장애 아동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많은 비장애 아동과 단 한 명의 장애 아동이 함께한 무대에서 사람들의 놀림의 대상이란 생각이 저를 아주 힘들게 했어요. 그 누구도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는데도 나를 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아직 저 역시 저 스스로 장애인 아이를 두었다는 죄책감을 완전히 덜어내지 못한 모양입니다.

 

-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이유가 있나?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아이 돌보는 시간에 함께 할 수 있다고 권유하셨죠. 장애의 유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가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은 활동하고 있는 아동들이 오래 되다 보니 표정만 봐도 아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 돌보면서 힘든 것은 없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커 주기만 바랄 뿐입니다.

 

인권 강사 교육도 수료하시는 등 인권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친구 권유로 인권 공부를 시작했어요. 인권을 알아가는 과정에 저도 몰랐던 것을 알아가고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름에 대한 인정입니다. 다양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더 인정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아이를 통해 많이 기다리고 존중하는 것, 영원한 저의 인권운동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장애인 인권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게 뭡니까?

장애인은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아요. 왜 장애아가 우리 학교에 오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학부모와 선생님이 있어요. 장애인을 벌레처럼 보는 시선도 많이 있고요. 부족해서 인간이 누려야 할 인권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다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불쌍하지도 동정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아침에는 출근하고 오후에는 퇴근할 수 있는 일터를 마련해주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길 나 역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