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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같이 기사

순풍에 돛달고 네 꿈을 펼쳐라

‘큰들’130명 풍물공연 참가한 이선화씨

“주부라서 엄마라서 포기하고 살지 않아”



지난 6월 22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큰들문화예술센터(이하 ‘큰들’)의 2013년 정기공연이 있었다. 올해로 창립 29돌을 맞는 큰들은 이산가족의 아픔과 상봉을 다룬 마당극 ‘순풍에 돛달고’와 큰들 단원과 지역민들로 구성된 ‘130명 풍물놀이’, 그리고 소리꾼 박희원의 판소리 ‘흥부가’의 박 타는 한 대목을 준비하여 관객들의 큰 호응 속에 정기공연을 올렸다. 


큰들의 마당극이야 해외에서도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이름난 공연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이에 못지않은 게 바로 ‘130명 풍물놀이’이다. 130명 풍물놀이는 큰들의 정기공연이 아니면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특별한 공연이다. 규모로서도 압도적이지만 무엇보다 이 공연이 전문 연희자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로 꾸려졌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리라. 일흔을 목전에 둔 할머니부터 다섯 살배기 쌍둥이 아이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 무대에서 장구를 치고 꽹과리와 북을 두드리며 어우러지는 광경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들 가운데 올해로 3년째 ‘130명 풍물놀이’공연에 장구로 참가하고 있는 이선화(42세) 씨를 만나 공연 참가기를 들어 보았다. 


총 리허설이 있는 날 무대 뒤에서 첫 만남을 가졌는데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반겼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그녀는 인터뷰 내내 생글생글 웃으며 아이들보다 더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남자 아이들이라 그런지 가족이 같이 공연 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그냥 좋다.”는 정도의 표현밖에 안한다고 아쉬워했지만 엄마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역력했다. 130명 풍물놀이에는 개인 참가자 외에 이선화 씨 가족처럼 가족 단위의 참가자가 공연단의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한다. 한편 수곡 마을 사람들은 단체로 모둠 북 공연에 참가했다는데 마을 공동체 단위로 한 가지 문화생활을 공유하는 이런 방식도 충분히 고민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선화 씨는 사천시 어린이 영어 도서관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일을 마치고 연습 시간에 맞춰 오려면 시간이 빠듯하여 저녁도 못 먹고 올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여덟 시가 가까워진 그 시간에도 전혀 지쳐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에 빠진 사람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희열이 넘쳐났다.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3개월 동안 일주일에 이틀씩 연습을 한다는데 다른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3개월 동안 공연 준비에 매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힘들 때가 없었냐는 질문에 선화 씨는 자기뿐만 아니라 공연에 참가하는 대부분이 연습을 통해 일상에서 쌓였던 피로나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시키고 돌아가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한번은 장구 연습을 하면서 신명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옆에 앉은 아저씨의 팔꿈치를 장구채로 세게 내리친 일이 있었단다. 장구채에 온힘을 실었기 때문에 상당히 아팠을 텐데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웃음을 보여 송구스러웠는데 그 다음부턴 자기를 볼 때마다 팔꿈치를 부여잡으며 “아이고 팔이야!”하며 놀려대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같이 웃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늘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는 분위기에서 연습을 하고 잠깐씩 쉬는 시간에는 김밥이며 과일이며 각자 싸온 간식들을 서로 나눠 먹는 재미 또한 쏠쏠히 즐긴다는데 슬슬 구미가 당기지 않은가.  


이선화 씨는 큰들 공연에 참가하기 전에도 ‘한살림’에서 하는 풍물 강습을 일 년 정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기량만을 배우는 강습보다는 삶의 지표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김진숙(큰들 대표 전민규의 부인) 씨를 통해 큰들을 만나게 되어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고 한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주부들도 자기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편하게들 얘기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고 당장의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시간과 비용을 들이기가 여전히 어렵다. 여유가 있더라도 자신보다는 아이들 교육이 우선인 게 대부분의 가정사다. 이선화 씨는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여자라서 엄마라서 주부라서 포기한 적은 없다고 한다. 누구라도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관심을 항상 열어두게 되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언젠가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자기 자신의 참모습도 찾을 수 있지 않겠냐며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꺼낸다. 


이번 공연에 참가하면서 비용은 얼마나 들였냐고 하니 강습비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의 돈이지만 얼마간의 참가비를 냈고 처음에는 의상과 악기를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부담을 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그 정도 비용이야 지불할 수도 있겠지만, 지자체 지원이 있다면 지역 예술단체에도 도움을 주고 지역민들도 경제적 부담 없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어 큰들과 같은 예술단체들의 공연을 두 배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창희 진주시장은 2년 전 ‘문화예술단체 대표 60인과의 대화’에서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경쟁력 있는 발전을 도모하고 문화예술의 도시에 걸 맞는 다양한 문화·여가 활동을 위한 문화시설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부로 실감할 수 있게 달라진 문화시설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지금의 열정을 어떻게 달래냐고 했더니 작년 4월에 진주 큰들 풍물단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져 그 모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일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아직은 풍물만큼 열의가 생기는 게 없어서 당분간은 오로지 풍물에만 몰입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에는 언니까지 끌어들여 공연에 참가하게 했단다. 풍물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모양이다. 큰들 창립 30주년인 2014년 정기공연에서도 이선화 씨의 생기 넘치는 그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정미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