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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같이 기사

(기고) 그 벼슬 뉘가 준 것이더냐

 (기고) 그 벼슬 뉘가 준 것이더냐 (홍창신 진주시민)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는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논거에 기대어 매겨지고 선택된 후 제도로써 눌러앉았다. 들여다보면 대충 이런 논리로 구슬린 것이더라.

 

1. 현실적 정치세력인 공당의 천거라는 보증서를 이마에 붙인 출마자를 보여줌으로써 유권자에게 선택의 기준을 제공한다.

 

1. 정당은 후보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입장이기에 어느 정도 요건이 되는 인물을 후보자로 공천하므로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불나방을 걸러내는 일종의 거름망 효과가 있다.

 

1. 정당을 배경으로 한 정책을 제시하므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 책임 있는 의회정치가 이루어진다.

 

1.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매개역할 수행으로 정당정치의 효율을 높인다.

 

먼저 써본 외국의 사례들을 훑어보고 만든 것이니 번듯한 이론전개에다 명분 또한 앞뒤가 여물게 다듬어졌으니 손색없이 각이 잡히긴 했다. 이런 번드르르한 도입사유가 그대로 착착 맞아떨어져 바르게 적용되는 정치 현실이라면 세상이 오죽 살만하겠나. 하지만 그동안 지방의회 기초의원의 천거과정을 지켜보건대 이 제도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착근은커녕 전문용어로 오야붕꼬붕의 순환생산 구조 같더라.

 

지역 국회의원의 막강한 권위에 기대어 선임 혹은 천거된 후보는 그간 다져진 정당조직의 작동 아래 선거를 치르니 이변이 없는 한 대체로 무난한 당첨(!)이다. 당선되면 그날 이후론 시혜자이며 지구당 위원장인 국회의원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서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매개자로서 책임 있는 의회정치를 구현하느라 윗선의 심기를 깨알같이 헤아리며 임기를 메운다.

 

세상 어느 나라 정치인인들 그렇지 않으랴만 선출직 정치인의 다음 목표는 오로지 재선에 있음이니 수십 년 똬리를 틀고 있는 지연이란 괴물 덕에 공천이 곧 당선인 천혜의 구조 속에서 공천이란 결정권을 옹차게 틀어쥐고 있는 이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말이다.

 

하향식 구조에서는 꼭대기에 앉은 권력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상부의 처분을 바랄 뿐이니 지역의 지구당 위원장 또한 어차피 재선이 지상목표이고 치러야 하는 선거의 전위조직인 단위 구역장들이 제 몫을 해야 현직을 이어 누릴 수 있음이니 그 꼬붕들을 착실히 관리하는 일이 주요한 업무가 됨이라. 물론 이들도 생사여탈의 공천권을 쥔 상위의 손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 이 사슬구조의 특성인 듯하다

 

물론 이건 국리민복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선량들로 채워진 우리 동네 이야기일 턱은 없지만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를 막론하고 이 제도의 폐해를 탓하며 폐지를 약속한 것을 보면 동네마다 구린내가 진동했음은 분명한 듯하다.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의 적극적 참여로 상향식 의사결정구조를 갖춘 진보 정당이 정당공천을 주창하며 여성이나 소수자 몫의 비례배분을 외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통진당 사태 이후 쪼가리 난 이 나라 진보는 기진한 상태다. 정의당, 노동당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를 주장하나 박근혜 당시 후보의 대선공약까지 모르쇠로 하고 그악스레 정당공천의 달콤한 끈을 놓지 않으려는 새누리당과 입을 맞춘 꼴이니 보기에 안쓰럽다.

 

 

-  기고 : 홍창신 (진주시민)